폭염 속에서 오가다 보니
사람을 만나더라도 에어컨 빵빵한 곳으로 찾아가기 마련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즐겨 찾는 곳은
바로 박물관이랍니다.
특히 서울은 조선과 대한제국, 대한민국
한반도의 중세, 근대, 현대
중심지로서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돌담길을 따라 걸어갔지만,
경복궁역, 5번 출구에서 바로 연결되는 길도 있습니다.
관람시간 변경 안내도 있고~
전시동 입구는
사진은 담았는데 너무 많은 분들이 같이 찍혀서
그냥 살짝 측면만 올려봅니다.
외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 손님들도 많았고
개별 관람객들도 많더군요
주말 무더위에 여기저기 더위를 식히기 위해
공간마다 있는 의자들이 가득가득
체험학습으로도 좋고
피서지로도 좋은 곳!!!!
최고의 장소
밖에서 비가 쏟아지고 천둥이 우르르쾅쾅
갑작스런 소나기에 다들 놀랐지만
이 안에서는 모두 평온
계획도시인 조선 수도
한양의 모습과 성리학의 나라로 자리잡는 모습들
그리고 궁의 위치, 의미
종묘제례에 대한 함의들이 쭉 나오고
나라의 상징물들
조선의 과학기술까지
돌에 새겨놓은 천상열차분야지도
실제 돌로 보니 더욱
실감나네요.
https://www.gogung.go.kr/searchList.do
공식사이트의 소장품 안내를 검색하면
자세한 내용이 나온답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
별자리지도를 새긴 돌
자격루 복원품
조선시대 왕의 중용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백성들에게 정확한 시각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왕은 백성들에게 일어날 시각과 일할 시간, 쉬는 시간 등을 알려 주어 일상생활의 리듬을 규제하고 통제함으로써 사회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시계는 권위와 질서의 상징이었고 통치의 수단이었다.
옛날에는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주로 해시계와 물시계를 이용하였다. 해시계는 해 그림자로 태양의 위치를 파악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것으로 낮에만 사용할 수 있으나, 물시계는 물의 증가량 또는 감소량으로 시간을 측정하기 때문에 24시간 작동이 가능하였다.
조선 세종 때에는 삼국시대부터 이용하던 물시계의 시각 알림 장치를 자동화하고 '스스로 치는 시계'라는 뜻으로 자격루를 제작하였다. 세종 임금의 명으로 장영실이 완성하였으며, 1434년 경회루 남쪽 보루각(報漏閣)이라는 전각에 걸치하여 국가의 표준시계로 삼았다. 이 시계는 도성의 성문을 열고 닫는 인정[(人定), 통행금지 시각, 밤 10시경]과 파루[(罷漏), 통금해제 시각, 새벽 4시경)], 오정[(午正), 낮 12시)]을 알려 주는 데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울 사람들에게 아침 · 점심 · 저녁 때를 알려 주어 생활의 리듬을 잡아 주는 등 조선시대 사람들의 표준 시계가 되었다. 자격루의 시각을 알려 주는 인형이 치는 종소리와 북소리를 듣고 이를 신호로 광화문과 종루에서 북과 종을 쳐서 시각을 알렸으며, 이에 따라 궁궐의 문과 서울의 도성문인 숭례문(崇禮門), 흥인문(興仁門), 돈의문(敦義門)이 열리고 닫혔다. 자격루는 보루각에 설치하였기 때문에 보루각루(報漏閣漏), 임금이 거처하는 대궐에 있다고 하여 금루(禁漏), 스스로 시간을 알리는 궁궐 시계라 하여 자격궁루(自擊宮漏)라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세종 때의 자격루는 그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1536년(중중 31)에 다시 만들어졌는데 그 일부인 물항아리[파수호(播水壺), 수수호(受水壺)]가 현재까지 남아있다.
그리고 열린 수장고
실제로 박물관들은 공개 소장본 전시장을 상대적으로 크지 않습니다.
박물관의 진짜 일 중 하나는
바로 소장품을 잘 보관하고 관리하고 복원하는 수장고
박물관 공간이 커야 하는 이유 중 하나지요.
그리고 의궤 덕에 알수 있는 많은 정보들
그야말로 기록 덕후랄까...
기록 마니아적인 조선시대의 수많은 그림과 글들은
이렇게 대단하답니다.
우앙~
실무자들을 위한 시물레이션이자
후대를 위한 기록들
21세기 드론 카메라 뺨치는 이들이죠.
그리고 빠른 손으로 기록했던
당대의 기록화가들
궁의 건축과 장식 의미들 뿐 아니라
다양한 신수들
그리고 복식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왕가의 사람들 사이를 오가던
다양한 편지들
흔한 편지지와 편지 봉투들이
유난히 곱습니다.
궁인들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유일한 연락방식은 편지....
그리고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 후 달라지는 모습들
19세기 후반부터는
한국사가 세계사에 편입되기 시작합니다.
조선도 세계 속의 한국이 되어야 하는 시점
파리만국박람회에 한국관을 설치하기도 하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됩니다.
그러나 한번이 이루어지는 변혁도
한번에 바뀌는 역사도 없지요.
입헌군주제가 아니라
황제권을 강화한 광무개혁은
근대적 입헌국가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것
근대화를 발걸음이 서양화로 나타난다는 것이 아쉬울 뿐
문명화과정에서 결국 서양화가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하고
서양열강들의 모습을 답습하게 되는
중체서용, 동도서기, 양무운동, 화혼양재
중국, 일본, 조선이 그 방향으로 따라가는 것이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모습이었죠
하나하나 변해갑니다.
지금 우리의 일상이 지극히 서구화된 것은
정체성의 문제로 봐야할 것인가
역사 발전의 한 형태로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그대로 안고 말이지요.
의식주, 복식이 바뀌고 관제가 바뀌고
역사는 흘러갑니다.
삶은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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