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묘의 단상

[지하철 비화] 머리채 잡혀도 사과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적묘 2010. 10. 5. 12:36

최소 25년 정도 지하철을 이용한 사람이라면

저마다 지하철 안에서 생긴 비화 정도는 한두개씩 있기 마련이죠


물론 환갑이 넘으신 우리 어머니가

엄마보다 어려보이는 사람한테 젊은게 앉아있다고 버럭 소리 질러서
어머니께서 황당해서 일어나 자리 양보했던 일도 있지만

-엄마 젊어보여서 그런거니 축하드려요..담엔 민증 꺼내라고 하세요
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일부터






사고로..;; 허리에 침을 맞으며 지내던 몇일은
외출을 최소화 해도 한의원에는 가야 하니까 지하철을 이용했었는데

노약자석에 나란히 앉은 어떤 여자분께
어르신 한분이 다가와서
그 여자분 귀에 꽂힌 이어폰을 뽑으며
'너 병신이야??!!'
라고 소리 질러 절로 겁 먹고

아 저 아파서 병원다녀요..라고 ㅡㅡ;; 자진 신고...해버리는 상황.
여자분은 도망가고
내 옆에 앉은 기운 펄펄하신 어르신께서는

- 그래 아프면 앉아도 되지만 쟤는 멀쩡하잖아!!


하고 내릴 때까지 일장 연설을 줄창하시더니 세네 정거장 가지도 않고 내리시드만..;;

-아..; 저 여자분도 임신 초기거나 몸이 어디 안 좋을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진짜 병신 이면 어쩔껀데요
그 마음의 상처는 어쩔..ㅠㅠ..ㅠㅠ







제일 황당했던건 머리채 잡혔던 일..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갈 땐 아무리 줄여도
어깨에 매는 가방 하나 트렁크 하나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노약자석 근처 문 옆에 짐을 내려 놓고
긴 이동시간을 버텨내고 있는 중

역시 곱게 차려 입으신 할머니 한분이 역시나 소리 질러 자리하나 접수해서 앉으시곤
몇 정거장 안되서 내리려고 나오시면서
뒤돌아 서 있는 내 머리채를 그대로 거머쥐어 눈물 쏙 나오도록 아프게..
그리고 정말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올 정도로,.ㅠㅠ

돌아보니 아까 약간..; 진상부리시던 그 할머니..;;

다들 시선이 집중 되어 있는데

- 내가 하려던 건 아니고

라는 어이없는 말..;;
일부러 가만히 서 있는 사람 머리채 잡아채면 폭행이거든요..ㅠㅠ 할머니

- 미안하다고 사과하시면 되는데요

침묵.....지하철 문이 열릴 때까지 아무도 말 안하고 있다가
눈물 그렁그렁 맺힌 나와 눈도 안 마주치고 휙 상큼하게 하차!!!!

-우리 세대가 교육을 잘 못 받아서
미안하면 미안하다 잘못했으면 잘못했다는 말을

하는 방법을 몰라요.
젊은 사람이 이해해줘요.
자꾸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사람이 굳어서 그래요.

내가 미안해요


라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어르신께서 말을 걸어주시더군요.



그외에도 지하철에서의 많은 기억들이 있지만..

저도 어른이니, 아이들이 잘못하거나
제또래 엄마가 아이들을 단도리 못해서 애들이 지하철에서 장난을 심하게 치거나
그런 경우는 가능한 말씀을 드리는 편인데요

아무래도, 어르신들께는 그런 것이 참 힘듭니다.



똑같은 상황..나들이 후 만취해서 지하철을 탄 경우에도
똑같이 행패를 부린다고 해도

젊은 사람에게 나이드신 분이 한마디 하시는 건 괜찮은데
그 반대의 경우는 참..;; 힘들지요.


그리고 그 경우엔 저도 차 칸을 옮기는 쪽을 택한답니다..;;;

이미 세상을 살아오신 분들이고
어떤 반응이 올지 무섭지요

-에미애비도 없냐!
-어린 게
-싸가지...

뭐 등등 험한 말씀으로 밀고 오시면


그 누구도 할말이 없으니까요.

이번 지하철 패륜녀란 제목으로 올라오는 기사들을 보면서

무척 심난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일어난 일을 말리는 사람보다
찍은 사람도 무섭고 말입니다!!!

딱 떠오르는 몇가지 일들로는
저도 항상 피해자 입장이 되어버리더라구요.

혹시 제가 만났던 그 분들 중 한분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ㅡㅡ;

근 10년을 2호선을 타고 다녔었으니
제가 봤던 그 분일수도 있겠구나 싶더군요.


잘못한 일은 인정하고, 사과하면 되는거지요.
거기에 가족을 욕하면서 감정을 끼워 넣으면서
직접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인륜과 예의로 넘어가버려
패륜녀 되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그때 이후
지하철에서 어디 까이거나, 머리채 정도 잡히는 걸로
사과받을 마음은 완전히 버렸습니다.

예..;;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거기 제가 있었던게 잘못이라고 하는데요

거기서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결과론적으론 욱하는 바람에 할머니에게 욕은 욕대로 먹고
매는 매대로 맞고
 동영상까지 찍히고 여기저기 다 파일이 돌고 있는
그 소녀에게도 거기 있었던 것이 하필이면 너 여서

.....
그냥....도닥도닥..해주고 싶네요.


그래도...모두 같이 살아가는 사회인데 말입니다.....

머리채 잡히면...아이든 어른이든, 어르신이든
사과하고 사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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