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묘의 일상/적묘의 고양이 이야기

[철거촌고양이]태어날때부터 의문, 어디로 가야 할까

적묘 2011. 3. 26. 09:44


그냥...

가끔 멍하게 있는거야

그렇잖아.


난 나이가 많지도 않아

이제 겨우 길고 긴 겨울지나고

내 생에 몇번 있지도 않은
봄이 찾아오나 했는데






지금까지 당연하던 세계가 사라지고 있어




차가운 시멘트에

네 발로 걷는 우리를 위한 세상은 아니지만




 이렇게 나딩굴고 있는 쓰레기들 중에서




먹을 것도 찾기 힘들지만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도망부터 치지만





사실 그건 내가 엉덩이에 자신이 있어서라고
수줍게 꼬리로 변명해 본다




내가 무얼 훔친 게 아니잖아
불법으로 태어난게 아니잖아





그냥 폐허 속에 잠시 몸을 숨겼다가

다시 어디론가 살 길을 찾아 헤메겠지




지금까지 살아 왔듯이

사람의 눈을 보면 몸이 잠시 굳어서 어쩔줄 모르다가





잠깐 또 숨었다가..




호의로 무언가를 주면

또 한입 먹고




무서운 소리나

갑자기 무언가 날아오면


잠깐 몸을 피하기도 하고





괜찮다 싶으면 또 한걸음 옮겨서


 


저 속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에

또 한번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혼자 있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것이 좋은데




둘이 함께 있는 것조차 버거운

도시의 삶...




추위에 털은 윤기를 잃었고
사람들이 떠난 동네엔 먹을 것도 없다



겨울 방학에 철거에..
밥을 챙겨주던 이들도

모두 어디론가..






네발을 다 옮겨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알수가 없다

그건...태어날 때부터의 의문

어디로 가야 할까


 


눈을 똑바로 뜨고

 



자세를 가다듬고



마음을 다잡고





곧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나도 떠나야 한다



다행히 우린 함께니까...




서로의 체온으로
위안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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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요약

1. 적묘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2. 저 둘은 한 배에서 난거 같아요. 닮은데다가 항상 같이 다닌데요.

3. 모두들 갈 곳을 찾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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